근친은 근친을 불렀다 - 단편

근친은 근친을 불렀다 - 단편

투딸 0 450

“어~ 뭐야 누나!”이십 여 년 저의 일이다.

전날 밤이 크리스마스이브라 고등학교 이학년으로서 얼마 안 있으면 노는 것은 생각을 할 수가 없는 삼학년이 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친구 몇 몇이 모여서 마시지도 못 하는 술을 친구 집에서 마시다가 친구 아빠가 예산보다 일찍 들어와 호통을 치는 바람에 어떻게 집으로 와서 잠이 들었는지 전혀 기억이 없었다.


그런데 아랫도리가 허전하고 누군가가 잦을 빨고 있는 것 같아 놀라 눈을 뜨니 나보다 한 살 나이가 많은 연년생 누나였다.

“히히히 깼니?”좆을 입에서 때고도 좆을 손으로 주물럭거리며 말하였다.

“뭐 하는 짓이냐고?”싫은 기분은 아니었지만 화를 버럭 냈다.

“어제 우리도 크리스마스 파티 했거든, 그런데 준혁이 오빠 알지? 그 준혁이 오빠가 술에 취하더니 이걸 깨내고 빨라고 하잖아? 정신을 차려 방안을 살펴보니 빨고 있는 것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고 있는 애들도 있더라고. 아차! 싶었어. 난 그 자리에 퍼질러 앉아 마구 울어버렸지. 개판이 되어버린 거지, 그러자 내 친구 하나 알지? 개도 자기 파트너에게 젖가슴을 주물림 당하다가 내가 울어버리자 따라 울었고 결국 하나와 나는 쫓겨났지.”좆을 여전히 주물럭거리며 말하였었다.

“그런데 그걸랑 이거랑 무슨 상관이냐고?”여전히 화를 내며 물었다.

“응, 그게 말이야 이렇게 하면 무슨 기분이 들기에 빨라고 하고 빠는지 모르겠어서, 히힛”여전히 손을 가만 두질 못 하고 있었다.

“그럼 난 뭐야?”더욱 화난 목소리로 말하자

“너도 빨아보고 싶니?”나의 화난 목소리에도 누나는 여전히 그도 당당하게 물었다.

“그럼 나도 손해는 아니겠지? 엄마아빠는?”아차 하는 마음에서 물었다.

“엄마아빠가 어디 일요일이라고 집에서 쉬는 것 봤니? 명절도 겨우 하루만 가게 문 닫지”누나가 말하였다.


나의 물음과 누나의 대답은 나로 하여금 돌이킬 수 없은 근친강간의 엇길로 발길을 돌리게 만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할 줄은 난 그때뭄 정말이지 몰랐다.


당시 엄마아빠는 아줌마 둘을 고용하여 우리 집에서 버스로 30분이나 떨어진 곳에서 반찬가게를 운영하였다.

반찬가게를 하기 전에 아빠가 사업이랍시고 하다가 다 날려버리는 바람에 음식 솜씨가 좋기로 소문이 났던 엄마가 그 가게 근처에서 노점으로 김치 몇 가지를 만들어 팔아 겨우 입에 풀칠을 할 정도였으나 입소문이 나자 빈둥빈둥 방구석에서 할 일 없이 놀던 아빠까지 합류를 하였고 노점 일 년 만에 가게를 세를 얻어 당당하게 장사를 할 수가 있었는데 얼마나 맛이 있었든지 버스를 한 시간이나 타고 와서도 사 가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


“넣기는 하지 말기다”누나가 파자마를 벗으며 말하였다.

누나의 그 말은 한 달이 지나지 않아 부질없는 말이 될 줄도 나나 누나는 전혀 몰랐었다.

“그래 좋아”반짝이는 보지 털을 쳐다보며 난 침을 흘렸다.

사실 난 갓난아기들의 밋밋한 보지는 가끔 봤지만 털이 난 보지는 누나 것이 처음이었다.

누나가 내가 누었던 자리에 눕고 난 노나 몸 위에 반대로 포개었다.

포개자마자 누나는 가다렸다는 듯에 나의 좆을 게걸스럽게 빨았지만 난 누나의 보지둔덕을 손가락으로 잡고 벌렸다.

위에 있을 것으로만 알았던 보지구멍은 생각과 달리 맨 밑에 있었다.

혀로 날름대기 시작하자 누나가 몸을 배배 꼬았다.

보지구멍과 클리토리스를 집중적으로 공략을 하였다.


“누나 이렇게 하면 정액 나와”내 손을 뻗혀 좆을 잡고 흔들어 보이며 말하였다.

“그거 쓰다던데......”누나가 말을 흐렸다.

“그러니 누나 유방이 이 모양 이 꼬락서니지”누나의 가자 약점인 거의 절벽에 가까운 젖가슴을 움켜쥐며 말하자

“그거 먹으면 커진데?”누나 눈이 토끼눈으로 변하였다.

“우리 집안에 봐 엄마 고모 이보 외갓집이나 친 갓집에 어떤 여자가 이런 가슴 가진 여자가 있어? 누나나 별종이라 이 모양 이 꼬락서니지”누나는 아부 말도 하지 않고 다시; 나의 좆을 빨면서 흔들기 시작하였다.

“누나 정말 대단하다, 어쩜 이렇게 물이 많이 나올 수가 있냐. 어어 끌꺽”누나 보지구멍에는 마치 수도꼭지를 하나 닳아놓고 튼 것처럼 맑은 물을 연반 흘러대었다.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나의 그 말은 누나로 하여금 쁘르게 용두질을 치게 만드는 경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으~삼켜 으~~~~~~~~~~”나의 좆으로 하여금 휴지나 변기 심지어 뜯긴 노트나 책이 아닌 여자의 입안으로 첫 분출을 시도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웩~웩!”누나가 구토를 하였다.

“삼켜 삼키라고 유방 크게 하고 싶으면 삼켜 어서”답답한 것은 나로 보였으나

“꿀~꺽 끌~꺽 꿀~꺽”정작 답답한 것은 누나 자심이라는 것을 알았던지 누나는 코를 잡고 나의 분신을 삼켰다.


“누나 좋았어?”좆 물이 더 이상 나오지 않자 몸을 바로하고 작은 젖가슴이지만 주무르며 묻자

“끝에가 조금”눈을 흘기며 말하기에

“좆 물?”하고 물으면서도 난 좆으로 누나의 보지둔덕에 대고 움직이면 누나가 좆을 잡고 상하로 오르락내리락 시켜주면서도 넣게 하는 것을 철저히 차단을 하였다.

“두고 봐 누나 유방도 얼마 안 가서 다른 여자들이 보기에도 탐스러울 정도가 될 거야”하고 말하면서도 계속 주물렀다.

“정말 그렇게 되겠지?”대답을 하는 누나의 눈에는 희망이 보였고 그 희망이 가득찬 눈은 앞으로도 계속적으로 할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가지게 만들었다.


내 생각은 적중하였다.

엄마아빠가 가게로 나가기 무섭게 누나가 스스로 내 븡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그리고 내 침대를 마치 자기 침대인 냥 기어들어오기 무섭게 파자마 팬티 브래지어까지 벗어던지고 마치 알아서 하라는 듯이 눈을 감고 있는 것이고 그러면 그때서야 나도 파바마와 티 그리고 러닝셔츠를 벗고 알몸의 누나 몸에 포갠다.그럼 누나는 나의 좆을 잡고 보지 금을 따라 상하로 이동을 시키면 일 분도 지나지 않아 돋 끝으로 미끄러운 느낌이 전하여지면서 누나의 호흡이 거칠어진다.


“경수야 그만 아~흑 어서 빨아 줘”누나가 보채기 시작하는 것이다.

“넣으면 안 돼”누나 눈치를 살피며 묻는다.

“미쳤니?”하는 말과 함께 금방까지 느껴지던 좆 끝으로 전하여 지던 매끄러움이 사라져버린다.

넣자는 말이 겁을 먹은 누나가 나의 좆을 보지 금에서 때어버리고 몸을 돌려버린 것이다.

꿩 대신 닭이라고 보지구멍에 박기를 단념하고 난 몸을 180도로 돌린다.

그런 그때서야 누나가 나의 좆을 잡으며 가랑이를 벌리며 바로 눕는다.


“넣지 마”보지 금을 벌리고 새끼손가락이 보지구멍 입구에 닿는 순간 누나의 앙칼진 목소리가 나온다.

“넣는 게 아니라 보려는 거야”얼버무리면서 보지의 제일 밑은 새끼손가락 입구에 대고 늘려본다.

“...............”누나가 아무 말이 없다.

대신 누나의 보지구멍이 대답을 한다.

새끼손가락이 겨우 들어 갈 정도로 좁아만 보이든 누나의 보지구멍이 늘어나는데 점점 더 커진다.

낸 좆 정도는 아주 쉽게 들어 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확인을 한 이상 다시 흥분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혀로 날름대며 핥아 가며 s 나의 보지구멍에서 마구 흐르는 음수를 삼키기에 여념이 없을 정도다.


반면 전날 처음으로 동생인 내 좆을 빨고 흔들었던 경험을 가진 누나의 솜씨가 하루 만에 몰라보게 숙련이 되어있다.

첫날은 무작정 빨기만 하고 시키는 대로 흔들기만 하더니 두 번째인 그날은 좆을 빨다말고 불알을 가볍게 주물렀고 그리고 불알도 혀로 날름대어 자극을 주었다.

누나의 전희 솜씨는 하루하루 달라 갔다.

하지만 겨울방학이 끝나는 날까지도 그 이상의 진전을 없었다.

누나가 졸업식을 하였고 난 이학년 마지막 봄방학에 들어갔다


봄방학 첫날 누나가 내 방으로 들어왔다.

“경수야 너에게 선물 받고 싶은 게 있어”누나가 방에 들어오자마자 선물 타령을 하였다.

“갑자기 무슨 선물”침대에서 일어나 가운데를 비우며 물었다

“브래지어가 맞는 것이 없어”홍도를 띈 얼굴로 대답을 했다.

“어디 봐”하고 젖가슴을 움켜잡았다.

첫날의 누나 젖가슴과는 비교가 될 정도로 탄력이 붙었고 컸다

“그치?”누나가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응, 그런데 여기로 먹었으면 얼마나 커졌을까?”누나의 보지둔덕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며 말하자

“,,,,,,,,,,,,,,,,,”누나는 말을 하지 못 하고 내 얼굴만 빤히 봤다.

“오늘도 싫어?”파자마를 벗기며 말하였다.

“몰라”반가운 반응이었다.

팬티만 남자 침대 시트 속으로 몸을 감추었다.

등걸이용 타월을 들고 곱게 접었다.

그리고 알몸이 되어 침대로 올라가 누나의 앙증맞은 팬티를 벗겼다.

엉덩이를 들었다.

접은 수건을 깔았다.

몸을 포갰다.

누나의 혀가 내 입안에서 난리를 피웠다.

하지만 최대 관심사는 따로 있었다.

누나 보지의 금을 따라 상하로 이동을 시켰다.

평소 같았으면 누나의 솜에 잡힌 체로 상하로 웁직였어야 할 나의 좆은 완전한 쟈유로움을 만끽하며 상하로 움직었다.


“악! 경수야 잠시만 기다려”마침내 나와 누나가 하나로 체결이 되었다.나의 좆이 누나의 보지에 들어가 채결을 시켰고 누나의 혀가 내 입안으로 들어와 채결을 시켰으니 상하가 채결이 된 셈이니 이보다 완벽한 채결이 어디에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공휴일이나 휴일 국경일 아침마다 벌어지는 일 중에 하나가 되어버렸다.

또 학원에서 선생님이 결강이 되면 난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럼 누나는 아무리 급한 일이 있더라도 보류시키고 집으로 와 나의 충실한 물받이가 되어주었다.


대학에 입학을 하였다.

그도 소위 명문대학에 말이다.

누나가 미국에 어학연수를 가기 전까지만 하여도 메일 누나와 난 빠구리를 하였다.

참 누나 한 번 내 아기를 가졌었다.

내가 대학에 입학을 하고 입학식을 한 날 둘이서 단출하게 파티를 하다말고 빠구리를 하였는데 한 번 싸고 나서 생각하더니 위험한 날이라며 걱정을 하였다.

난 다시 누나를 올라타고는 이와 위험했다면 확실하게 위험 해 보지며 다시 빠구리를 했고 좆 물을 모조리 누나 보지구멍에 뿌려버렸다.

누나 예상대로 임신이 되었다.

누나는 부리나케 중절수술을 하였다.

그 후로 누나는 좆 맛을 알아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미국으로 어학영수를 떠났고 그 때부터 내 좆을 굶기 시작하였다.


그때는 엄마아빠의 반찬가게는 말 그대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작은아버지내외까지 합류를 한 것이다.

작은아버지 한 때는 떵떵거리며 살았다.

하지만 작은엄마가 보증을 잘 못 서 주는 바람에 거리로 쫓겨나게 된 것을 엄마가 거두어들인 것이다.

엄마아빠는 작은아버지내외를 거두어들이기 위하여 무리를 하였다.

예전 가게가 아닌 새로운 가게 매장 크기만 20평이고 김치를 담그고 버무리고 다른 밑반찬을 만드는 가게 뒤에 딸린 공장만하여고 50평에다가 이층에 가게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 숙소가 있는 건물 자체를 은행에서 융자를 일부 받고 저축이 된 돈으로 사버린 것이다.

그리고 3층을 올렸고 작은 아버지 내외를 거기에서 살도록 한 것이다.

처음 작은 아버지 내외가 삼층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누나는 일주일이면 한 시간을 작은 아버지의 무남독녀인 정아 과외를 하였다.

사업이 망하기 전만 하여도 반에서 중위권을 유지 하였으나 집안이 내려앉으면서 밖으로만 돌자 작은어머니가 누나에게 애원을 하여 무료로 한 시간씩 가르친 것이다.

누나가 어학연수를 떠나자마자 불똥은 나에게 튀었다.

회계사무사 시험 준비로 시간이 없다고 해도 만무가내였다

거기다가 엄마까지 가세를 하였다.

작은아버지 내외가 들어오고 사람들이 더 부지런해졌고 매상도 훨씬 올라 잡아 두지 않게 된다면 가게 접을지도 모르다고 협박까지 하였다.

어쩔 수없이 맡아야 하였다.

대신 집으로 오는 조건이었다.


중 이인 정아는 언뜻 보기에는 착실해 보였으나 내면을 들여다보니 그렇지가 않아보였다.

소위 까진 애 심하게 말하여 날라리 같았다.

아니 날라리였다.


두 주까지는 착실한 애로 보였다.

세 째 주가 되자 정아는 돌변하였다.

나 보고 애인이 있느냐고 묻지를 않나 누나라고는 하지 않고 있었다고 하자 어디까지 갔었느냐고 묻는 것은 보통이었다.

공부를 하면서 반대편에 앉던 애가 내 옆에 바짝 붙어 앉지를 않나 심지어 옷도 달라졌다.

한 겨울인데도 카파를 벗으면 가슴골이 그대로 들어난 옷을 입은 것은 보통이고 심한 경우 젖꼭지가 그대로 들어난 한 눈에 봐도 노 브래지어의 어린셔츠만 일을 경우도 종종 보였다.


“정아야 오빠랑 해 보고 싶니?”내가 누나와 근친상간을 한 경험이 없었다면 내 입에서 나올 수 없는 발안이었겠지만 정이의 도발적인 옷이며 말은 나에게 또 하나의 근친상간을 유도하고 있었다.

“정말?”정아는 두말을 하지 않았다.

대답과 동시에 벌떡 일어섰고 순식간에 몸에 붙은 실오라기를 한 올 남기지 않고 알몸이 되에 침대에 거침없이 들어 누웠다.

“처음 아니지”올라가며 물었다.

“오빤 내가 숫처녀이길 바랬어?”콧방귀를 뀌듯이 물었다.

“그건 아니지만”하고 말은 하였지만 실망스러웠다.

“그렇다면 올라와 공짜로 배우는 것이 부담이 되었는데 이제 공짜 아니지”몸을 포개자 업썩 끌어안으며 말하였다

“그래 그렇게 생각해”하고 말하며 좆을 사촌여동생 보지구멍에 힘주어 박았다.


“!”겨우 중학교 이학년인데도 정아의 보지구멍은 누나의 보지구멍보다도 더 헐렁하였다.

“너 원조 했었니?”너무나 헐렁함에 성욕이 살실될 정도였다.

“용돈이라고는 구경도 못 하는데 그럼 어떻게 해”마치 엄마아빠가 사업에 실패를 하여 어쩔 수가 없이 원조교제로 용돈을 번 것을 당연시 하였다.

“오빠한테 오지 그랬어?”아쉬움이 남는 부분이었다.

“지금 같으면 그랬겠지만 그때 정말이지 경황이 없었어, 쓰고 싶은 곳은 많고 돈은 없고 아~오빠 잘 한다.”놀랍게도 누나의 경우 내가 대학 입학 기념 빠구리에서 피임을 하지 않고 한 바람에 임신을 했었고 중절 후부터 좆 맛을 알아 갔는데 겨우 중학교 이학년뿐이 안 된 정아는 좆 맛을 알고 있었다.


“요즘도 원조하니?”펌프질을 하며 물었다.

“엄마아빠 용돈 주는데 할 필요가 어디 있어”눈을 흘기며 말하였다.

“좆 맛을 아는 것 같은데?”하고 묻자

“비밀 지키지”정아가 웃으며 물었다.

“원조부터 이것까지”힘주어 펌프질을 하며 말하자

“작년에 덜커덕 해서 지우느라 친구에게 빌렸고 갚느라고 했었어. 지금은 다 갚았어.”임신을 하여 중절을 했다는 말을 하였다.

“그래 이제는 생각이 있으면 너도 모르게 하고 싶단 말이니?”펌프질을 하며 말하자

“응 이제 오빠 전속하면 어떨까?”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태연스럽게 나의 물받이 노릇을 자청까지 하였다.


“너 근친상간이 뭔 줄 아니?”내 입에서 근친상간이란 단어가 먼저 나올 줄을 꿈에도 몰랐었다.

“알아, 하지만 임신만 피하고 남에게 발각만 되지 않게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야?”난 대학생 신분이면서 되레 중학교 이학년 계집애에게 훈계를 당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학년은 마치기 전까지 정이는 내가 부르면 언제라도 달려와서 가랑이를 벌려주는 불받이 노릇을 아주 착실하게 해 주었다.


대학 이학년을 마치기 무섭게 난 군대에 입대를 하였다.

누나는 이년이 지나도 오지 않았고 휴가 나가면 정아는 어김없이 나의 물받이가 되어주었다.

군대를 제대를 하고 집으로 가니 누나가 와 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하자고 하도 거부를 하였다.

말이 먹혀들지 않자 내가 협박을 하였다.

누나가 먼저 하자고 했다고 소문을 내겠다고 말이다.

약효는 있었다.

하지만 정말이지 실망스러웠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면 내 대가리도 쉽게 들어 갈 그런 보지로 변하여 있었던 것이다.

짐작컨대 누나는 자기에게 조금만 관심을 가져주는 양놈이라면 그 양놈이 흑인이든 백인이든 중동사람이든 유럽인이든 구분하지 않고 벌려준 것 같았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야 그렇게 쉽게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주먹이 보지구멍에 박힐 리가 없을 것이다.

내 좆으로 아무리 박아도 좋다는 표현을 하지 않기에 하루는 좆을 박는 척 하고 주먹을 그대로 박아버렸다.

그러자 누나의 입에서 겨우 신음이 나왔고 난 좆을 박기를 포기하고 주먹으로 누나 보지를 공략을 하다가사정이임박하자 딸딸이를 쳤고 주먹으로 누나 보지구멍을 늘려서 주먹과 보지구멍 틈에 좆을 끼우고 좆 물을 뿌리고는 그 후로는 내가 되레 누나를 피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누나는 대학을 다니면서 외국어 학원에 강사를 하였고 대학을 마치기 무섭게 같은 학원이서 원어민 강사로 와 있던 양놈을 나의 매형으로 받아들이더니 얼마 안 가서 미국으로 가버렸다.

누나의 미국행은 나를 훌훌 날게 하였다.


개보지 아니 억센 남자의 마름 주먹이 들어가는 그런 보지를 가지고도 꼴에 눈치는 있어서 나의 또 다른 근친의 대상인 작은 아버지의 딸 정아가 나에게 과외를 받으려고 오는 날이면 마치 감시원이라도 된다는 듯이 방문을 열어놓고 공부를 하라고 하고 매형이 될 양놈을 집으로 불러들여 방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잡다한 소리에 간간이 신음까지 내면서도 불시에 정아를 공부시키는 내 방을 점검하기도 하였으니 누나의 미국행은 나에게 날개를 달아 준 것이나 다름이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도 잠시였다.

정아가 고등학교 삼학년이 되던 해에 엄마아빠의 반찬가게는 계속 성업을 하였고 밀려드는 주문에 날밤을 세우기 일쑤이다 보니 엄마아빠 그리고 작은 아버지 내외가 궁리를 한 끝에 지방에 분점을 두기로 하고 배추 무를 비롯한 채소류 전부와 기타 밑반찬 재료 그리고 양념류 일체까지 본점 격이 엄마아빠의 공장에서(그때는 이미 반찬가게 수준을 넘어서 식품류 제조 허가를 받은 당당한 공장이 되었음)공급 받아 엄마아빠의 등록상표로 생산을 하는 제 2공장을 두기로 했고 거기 관리자를 작은아버지 내외가 맡기로 함에 따라 지방의 공단으로 이사를 감에 따라 나의 근친은 정아를 마지막으로 종지부를 찍는 것으로 알았다.


엄마아빠의 반찬공장은 날로 성업을 이루었다.

작은아버지 내외가 운영을 하는 제 2공장까지 풀가동을 시켜도 소비자가 원하는 만큼의 반찬을 공급하지 못 하였다.

기숙사로 사용하던 곳을 공장으로 변경을 하고 삼층을 올려 기숙사로 사용을 하더니 그도 부족하여 삼층까지 공장으로 만들고 하루 종일 사람이라고 해 봐야 나와 하루 서너 시간 정도 눈만 붙이고 가든 집도 일층을 리모델링하여 기숙사로 바꾸면서 이층으로 올려 이층의 절반도 기숙사로 쓸 수 있게 하고 엄마아빠 방과 나의 침실 서재 이렇게 발 3개에 거실과 욕실을 둔 복잡한 우리 살림집 공간이 새로 생겼다.

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단 이 년 안으로 우리 집의 기숙사는 모조리 다른 곳으로 이전을 한다는 조건으로 말이다.


밑반찬 공장에서 기숙사 생활을 한다면 뻔 한 것 아니겠는가.

동남아시아나 중국 러시아 등등의 나라에서 온 근로자가 주이지만 한국 아가씨들도 있다.


현제 대한민국의 보육시설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만 18세가 되면 보육시설에서 나와야 한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살다가 나오면 대개 술집이나 밑바닥 생활을 하게 마련이다.

엄마아빠는 거기에서 착안을 한 것이다.

각 시설에 공문을 보내고 시설에서 나와 야 하지만 딱히 갈 곳이 없는 애들을 받아들인 것이다.


최저임금?

우리 엄마아빠의 사전에 그런 단어는 없다.

엄마아빠의 신조에 그 단어는 악덕 사업자들과 정부가 입을 맞추어 사탕발림을 한 단어일지는 몰라도 사라져야할 일순위 단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엄마아빠가 운영하는 공장에서 일을 하며 기숙사 생활을 하는 여자들은 엄격한 규율에 따라 생활을 하여야 한다.


참 여기서 잠시 하지 못 한 이야기가 하나있다.

내가 군대 가기 직전에 여고를 다니던 여자 애가 들어왔다.

얼핏 들리는 말로는 고아원에서 생활하다 엄마와 연락아 닿아 데리고 왔는데 그 애에게는 겨우 9살짜리 여동생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자매는 명절이면 이상한 행동을 하였다.

명절 당일에는 자매가 함께 와서 우리 엄마아빠에게 인사를 올리고 명절 다음 날이면 언니만 와서 또 인사를 드리고 가는 것이었다.

또 나와 마주치면 얼굴을 붉히며 외면하기 일쑤였고 그렇게 이틀에 걸쳐서 오는 이유를 엄마아빠에게 묻기라도 할라치면 빙그레 웃으면서 세월이 가르쳐줄 것이라는 알다가도 모를 말을 할 뿐이었다.


앞에서도 언급을 하였지만 난 회계사무사 자격시험 준비 중이었다.

아니 3학년 때 이미 한 번 실패를 하였다.

사학년이 되자 조급증이 생겼다.

사학년 때 무조건 합격을 해야 한다고 다짐을 하였다.

여름이 되자 엄마에게서 엄명이 떨어졌다.

엄마의 친정 고종사촌 동생이 시집간 동네에 가서 공부를 하면서 고추를 지키라고 말이다.


엄마의 밑반찬 공장에서는 참깨 말고는 모조리 국산을 쓰고 그중에서도 엄마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고추는 태양초가 아니면 사용을 하지 못 한다.

우리 아버지의 고향과(대부분인 논농사임) 달리 엄마의 친정 고종사촌 동생이 시집간 동네에는 밭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밭농사를 지어 봤자 중간에서 농간을 부리고 실제 농부는 땀만 흘리지 소득은 별로였다.

그런 엄마의 친정 고종사촌 동생이 시집간 동네와 엄마의 반찬 공장이 고추를 전량 수매하기로 한 것인데 일부 농가에서 가격이 계약을 할 당시에 비하여 오르면 몰래 다른 중간상인에게 파는 경우도 있고 대부분의 태양초가 그렇듯이 한 번 기계에 넣어 찐 후에 태양 아랫니서 건조를 하여 태양초라는 이름을 달고 팔리는데 비하여 꼼꼼하기로 소문이 난 우리 엄마는 100% 태양초만 고집하였고 구추가 생산되기 시작하면 아버지 일가친척 중에 어른 한 명이 그 동네에 상주하여 고추 방출을 저지하였는데 그 분이 병환이 들자 나에게 조용한 거기에 가서 공부도 하고 고추도 지키라는 특명이 떨어진 것이다.


예전에 어려서 엄마 손에 끌려 몇 번인가 가 본 그곳은 정말이지 경치도 좋았다.

그리고 한 270m 정도 되는 산봉우리에 오래 된 정자가 하나 있었다.

그 낡은 정자를 아버지 어머니가 운영하는 공장에 헐어버리고 신축을 했다.

고추 감시원은 거기에서 망원경으로 감시를 하는 것이 첫째 임무이고 그 산봉우리 뒤의 옆 산에 안개가 끼기 시작하면 비가 오기에 마을과 연결된 확성기를 통하여 사이렌을 울리면 밭에서 고추를 따든지 다른 일을 하더라고 고추 건조장으로 나와 비닐을 씌어 고추의 색이 변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 산봉우리도 엄마의 친정 고종사촌 동생이 시집간 동네 쪽의 것만 아버지 명의로 샀고 반대편에는 중턱까지 저수지가 조성이 되어있지만 그 저수지로 흘러내리는 물은 우리 산에서 흘러내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산의 뒤 바로 옆에 위치한 높은 산에서 흐르는 것이고 그 산에 안개가 끼면 부가 오는 것이다.


높이가 270m라고는 하지만 지형이 험준하여 산악용 오토바이크를 타고 올라가야하고 올라가는 길도 지그재그로 되어 있어 위험하기 짝이 없다.

엄마아빠의 철저함은 마을 입구부터 다르다.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가 마을에서 한 400m 정도 떨어져 있고 거기에는 개울이 있으며 개울을 지나는 다리가 있는데 거기에 센서를 부착하여 정자에서 감지가 된다.

정자의 센서가 울리면 그때 일어나서 망원경으로 그 차를 추적 한다.

그리고 무엇인지 모르는 물건이 매매로 보이는 광경이 포착이 되면 마을 경로당에 계시는 엄마의 친정 고종사촌 동생 시아버지에게 전화를 하고 그럼 엄마의 친정 고종사촌 동생 시아버지께서 나오셔서 감시를 하는 것이다.


물론 마을 입구에 <**마을의 고추를 비롯한 농산물(쌀 제외)전량 **식품과 수의 계약이 이루어졌기에 매매 자체가 불법이며 불법 행위가 이루어질 경우 즉시 민형사상 고발을 당함>이라고 큼직하게 경고문이 붙어 있지만 고추 가격이 급등을 할 경우 어리석은 농민 몇 몇이 불법행위를 하기에 미연에 방지하자는 차원에서 산봉우리의 정자를 감시 초소를 겸하여 감시원의 숙소로 사용이 되는 것이다.


사촌여동생이 작은 아버지를 따라 지방으로 내려가자 마땅한 빠구리 상대가 없는 그곳이 갑자가 싫어졌다.

그러던 차에 엄마아빠가 나에게 거기 가서 감시를 하면서 회계사무사 자격시험 준비를 하라고 지시를 한 것이다.

바로 보따리를 쌌다.

물론 처음에는 아버지가 내려가는 날을 토요일 오후로 정하고 동행을 했다.

아빠와 난 거의 7시가 넘어서 도착을 하였고 아빠는 마을 사람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하고는 업무가 바쁘다며 처제인 엄마의 친정 고종사촌 동생과 나에게 뒤처리를 부탁하고 올라갔다.


마을 사람들은 우리 아버지가 내려오는 날은 잔칫날로 생각을 하였다.

아버지는 내려가기 전에 엄마의 친정 고종사촌 동생에게 음식을 준비 시킨다.

마을 회관과 마당에서 벌어진 잔치는 말 그대로 어느 잔치에 비하여 풍성하였다.

그 마을을 다른 마을에 비하여 아이들 수도 월등히 많았다.

귀농 인구가 많은 탓이었고 귀농 인구가 많은 이유도 엄마아빠의 덕이었다.

농사라는 것이 많이 재배하면 똥값이 되어버리고 재배 량이 적거나 날씨 탓에 감소가 되면 금값으로 변한다.

나만 생산이 많고 다른 농가에서 수확량이 적으면 나는 목돈을 잡을 수 있지만 반대로 다른 농가는 채산성이 맞는데 나만 안 될 경우 농사를 짓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는 것이 농민의 절박한 마음이다.

그런데 수확량이 많든 적든 간에 적당한 가격이 확보가 된다면 농사를 짓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걸 우리 엄마아빠가 해결을 해 주자 밭 값이 말 그대로 금값이 되었고 금값을 주고서 사더라도 농사가 보장이 되니 귀향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어디로 돌아다니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나는 엄마의 친정 고종사촌 동생이 사는 동네로 아빠를 따라가며 필요한 것을 거의 모두 두 달 치분을 준비하였다.

회계사무사 자격시험 준비 중이었기에 필요한 책과 문구용품은 물론이고 음료수에 과자 그리고 생과일의 경우 약간만 준비하고 대신 통조림 과일을 여러 가지로 준비를 하였다.


잔칫날 아닌 잔칫날에 나에게 유난히 관심을 가진 애가 하나 있었다.

엄마의 친정 고종사촌 동생의 딸이라고 했다.

다른 아이들과 잔치 음식을 가지고 다투는 것 같다가도 나와 시선이 마주치면 항상 싱글벙글 웃었다.

거기까지도 좋았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여 윙크까지 날렸다.

말 그대로 어안이 벙벙하였다.


“오빠, 오빠는 공부가 그렇게 좋아?”다음 날 아침 정자 안에 마련이 된 숙소에서 일어나 집에서 엄마가 지어준 몇 칠분 밥의 일부를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엄마아빠 공장에서 생산된 반찬들을 접시에 올려놓고 먹으면서 책을 보는데 엄마의 친정 고종사촌 동생의 딸이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아침부터 웬일이니? 올라오기 힘들지 않았어? 밥은?”한꺼번에 물었다.

“오빠 숨 넘어 가는 거 아니거든요? 찬찬히 하나씩 물어요.”이름도 모르는 엄마의 친정 고종사촌 동생의 딸이 정자 위로 신발을 벗고 오르며 말하자

“그래 좋아 웬일이니?”하고 웃으며 책을 덮고 묻자

“사람 있는데 사람이 오는 것이 일인가요?”대답 자체가 걸작이었다.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올라오기 힘들지 않았어?”다시 물었다.

“보고 싶은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백두산인들 못 올라갈까요?”엄마의 친정 고종사촌 동생의 딸의 입에서 놀라운 말이 나왔다.

“아니 뭐라고?”토끼눈을 하고 보며 물었다.

“오빤 제가 싫어요?”서 있다가 갑자기 내 옆에 앉으며 물었다.

“넌 아직 어려 아직 공부할 나이야”하고 말하며 옆으로 조금 물러났다.

그리고 난 엄마의 친정 고종사촌 동생의 딸을 유심히 봤다.


앳된 중학교 이삼 학년 정도로 보였지만 티 위로 비치는 가슴골로만 본다면 중학생이 아니라 대학생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깊게 파였고 금방 칠한 것으로 보이는 손톱과 발톱의 빨간 매니큐어는 깜찍스럽기까지 하였다.

“물론 오빠 말이 틀린 것은 아녜요. 하지만 마음에 드는 사람보고도 모른 척 하는 것도 제 나이에 해야 하는 거 알죠?”어이가 없었다.

“참 소개가 늦었네요. 중학교 이학년이고요 성은 강이고 이름은 수임이 강수임 촌스럽죠?”악수를 청하며 말하였다.

“아니 난 박 연철이야”하고 난 악수를 하였다.

“무슨 공부를 해요?”책을 펴며 물었다.

“그런데 수임이 너와 내 사이가 어떤 사이인지는 알지?”진지하게 물었다.

“알아요. 엄마의 고종사촌언니 아들이라고, 그런데 왜요?”책을 덮으며 물었다.

“그럼 근친상간도 알겠네?”다시 물었다.

“알아요, 하지만 제가 오빠하고 결혼하자고 했어요? 서로 좋으면 사랑 정도는 하자는 것이지”정말이지 맹랑한 아이였다.

“허어 사랑이 뭔 줄 알기나 하니? 어떻게 하는 것인 줄 알고”말과 달리 몸은 이미 한계 상태에 이른 지경이었다.

“그럼요, 당장 하자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얼굴 하나 붉히지 않고 떳떳하게 말하는 수임이의 행동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뭘?”놀란 것은 되레 나였다.

“빠구리 말하는 것 아니야?”아예 반말을 하면서 빠구리라는 단어까지 구사하였다.

“일단 오늘은 그냥 내려가라”하고 말하였다.

“좋아요, 오후에 다시 올게요.”하고 말하더니 정자 밑으로 내려가 신발은 신더니 뒤도 안 돌아보고 내려갔다.

난 정자에 앉아서 밥을 먹지도 못 하고 수임이가 내려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산봉우리 위이지만 너무 더워 선풍기를 틀어놓고 책을 펴고 공부를 한다고 했지만 눈에 글은 들어오지 않고 수임이의 가슴골만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딸딸이를 쳐서 좆을 죽였지만 눈치 없는 좆은 바로 다시 살아나기를 반복하였다.

수임이가 내려가고 오전에만 무려 세 번을 쳤지만 좆의 상태는 여전하였다.


“오빠 생각 해 봤어? 구질구질하게 달라붙지 않을 거야, 오빠가 우리 마을에 오면 그때만 애인하자! 응”점심을 먹고 난 망원경으로 마을의 밭과 차가 들어오는 것을 감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수임이 집만 주시하고 있었다.

“경험은 있니?”웃으며 물었다.

“자위는 했어도 남자하고 하지 않았어.”나의 물음이 그때서야 신발을 벗고 정자로 오르며 대답을 하였다.

“후회 안 할 자신은 있고?”다시 물었다.

“오빠처럼 핸섬한 남자 만나서 주기도 힘들겠지?”다가와 안기며 말하였다.

“야! 누가 보면 어쩌려고”놀라며 난 수임이를 밀었다.

“아! 그건 그렇다, 저기가 방이지”정자의 절반을 잘라 만든 방을 가리켰다.

“응 그래”난 대답을 하면서 수임이 손을 잡았고 그리고 방으로 데리고 갔다.

“오빠 사랑 읍!”난 수임이 입에 입을 포개고 말았다.

또 다른 하나의 근친이 시작이 된 것이다


키스가 시작이 되자 수임이는 알아서 바지 혁대를 풀더니 팬티와 바지를 함께 내렸고 그러자 나도 트레이닝바지와 팬티를 한꺼번에 내렸다.

세 번이나 딸딸이를 쳐줬던 좆은 제 세상을 만난 듯이 튕겨져 나왔고 영원히 끊길 것으로만 생각하였던 근친상간의 끈이 다시 이어지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수임이의 벗은 알몸은 대단하였다.

중학교 이학년 학생이라고 믿기에 어려울 정도로 거대한 젖가슴과 그레 걸맞은 깊은 가슴골은 정말로 그 어디어서도 본 적이 없는 그런 모습이었다.

거기에다 도시의 아이들과 달리 검게 그을린 피부는 탱글탱글하여 더 아름답게 보였다.

그리고 이미 작정을 하고 왔던지 보지에는 물기가 축축하여 전회가 구태여 필요한 상환이 아니었다.

“악! 잠시만 있다 해요”수임이가 눕자마자 난 수임이 몸 위로 올라 좆을 수임이 보지에게; 강하게 박아버렸다.

누나 그리고 사촌여동생과 했었고 누나의 경우 수임이처럼 숫처녀였지만 자위를 많이 하였던 탓인지는 몰라도 그저 빡빡하다는 정도였던데 비하여 수임이 보지의 좆 물림을 잠시만 있다가 하라고 하지 않더라도 바로 펌프질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빡빡하였다.

척 빠구리를 하고 얼마 안 되어 여름방학이 되자 난 거의 매일 수임이 보지를 즐길 수가 있었다.


수임이를 먹고 나서 얼마 안 되어 난 또 하나의 근친을 하게 되었다.

산봉우리 정자에서 혼자 지내다 보니 엄마가 이모에게 몇 칠에 한 번 씩 공장에서 만든 밑반찬을 보내어서 나에게 전하라고 하면서 올라가서 밥이 없으면 밥을 안쳐주었으면 했던 모양이었다.


그날 오전에 수임이가 와서 두 탕을 뛰고 갔지만 혈기 왕성한 총각인 나로서는 두 탕으로 만족을 하지 못 하여 용두질을 치고 있었다.

“드르륵 경수야 어머”정저에 딸린 방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이모가 들어왔고 그리고 나의ㅏ 딸딸이 치던 좆에서 시선을 때지 못 하였다.

“죄.....죄송해요 이모”황급히 난 좆을 트레이닝바지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그럴 나이지 밥은 있니?”물으면서도 트레이닝바지 가장자리에서 시선을 때지 못 하였다.

“내일 아침까지는.........”대답을 하면서도 난 주머니에 손을 넣고 좆을 눌러 탠트를 없애기에 급급하였다.

“그럼 그건 따로 퍼 둘 것이니 데워먹고 새로 안쳐 놀게”하고 말하며 싱크대에 섰다.


“경수야 돈이 급해서 그런데 고추 10근만 내다 팔면 안 되겠니?”이모는 밥을 안치기 시작하였고 난 애써 좆을 누르느라 말을 하지 않은 한 동안 침묵 끝에 이모가 먼저 말을 걸었다.

“수매 가격보다 시장 가격이 좋아요?”이모를 보고 물으면서도 난 여전히 트레이닝바지주머니 안에 손을 넣고 좆을 누르고 있었다.

“그건 아니지만 돈이 급해서”이모가 말하며 돌아섰다.

"엄마에게 돈을 보내 달라고 하지 그래요“하고 말하자

“한두 번이어야 말이지”이모가 곤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말하였다.

“기다려요 이모”하고는 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고 이모의 사정을 말하고 이모 계좌로 날이 밝는 대로 입금을 부탁하자 엄마는 이모를 바꾸어 달라고 했고 얼핏 듣기에 엄마는 자기에게 직접 이야기를 하지 조카에게 그럼 말을 하면 되느냐고 나무라도니 다시 나에게 잘 지키라고 하고는 끊었다.


“고맙다 경수야 부탁이라도 있니?”이모가 물었다.

“없어요, 이모”하고 말하자

“아까 그건”이모가 트레이닝비지 가장자리를 턱으로 가리키며 얼굴을 붉혔다.

“................”할 말이 없었다.

“도와주련?”하고 말을 마치기 무섭게 이모는 트레이닝바지 안으로 손을 넣었고 좆을 끄집어내었다.

“이.....이모”토끼눈을 하고 이모를 보자

“사실 이모부가 알코올 성 고혈압으로 발기부전이라 이거 구경을 한지 오래 됐어. 휴~”한숨을 쉬며 말하였다.

“하지만...........”알아 네가 고종사촌 언니 아들이라는 것 하지만 그전에 넌 남자이고 난 여자야 자주 올라오지 않을게. 밥 안치러 오는 날 한 번이면 족해“하고 말하더니 치마를 들쳤고 그리고 팬티를 벗고 티까지 벗어버렸다.

“!”난 놀랐다 수임이 엄마인 이모고 가슴골이 장난이 아니었다.

수임이가 이모를 그대로 닮은 것이었다.

그렇게 하여 난 엄마의 친정 고종사촌 동생인 이모마저도 먹게 되었다.


그도 수요일과 토요일에는 아침에는 엄마의 친정 고종사촌 동생의 딸인 수임이와 두 탕 이상 하였고 저녁에는 수임이가 나온 보지구멍에다가 한 번의 좆 물을 뿌려야 하였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은 산봉우리 정자에 앉아 경비만 보던 아버지의 일가친척이 병든 원인도 알았다.

내가 경비를 서기 바로 전 해에 고추 금이 장난이 아니었는데 아빠엄마에게 숨기고 고추를 몰래 내다파는 것을 눈감아주는 조건으로 부락 여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아버지의 늙은 일가친척 분에게 가랑이를 벌려주었고 늙은 몸으로 많은 여자들과 동침을 하다 보니 기가 허하여져 입원을 한 것이란 것을 알았다.


하지만 엄마의 친정 고종사촌 동생인 이모와 이모의 딸인 수임이와의 관계는 고추 철이 지나자 끝이 나고 말았다.

그로서 나의 근친상간의 역사는 종지부를 찍는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그해에도 회계사 자격시험에는 붙지 못 하였다.

아빠엄마가 아빠엄마 일을 도우라고 하였다.

다른 곳이 취업을 하려 허리를 숙여가며 사느니 그게 났겠다 싶어 같이 일을 하기로 하였다.

공장에 출근을 하니 명절마다 당일에는 여동생하고 같이 와서 인사를 하고 이튿날이면 다시 혼자 와서 인사를 하던 이상한 아가씨가 있었다고 앞에서 잠시 언급을 하였던 그 아가씨가 나를 제일 반갑게 맞이하였고 알고 보니 그 아가씨는 식품공학과를 우리 엄마아빠의 도움으로 다녔고 또 공장에서 책임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하였다.

예쁘기도 하지만 몸매도 좋았다.

거기다가 엄마아빠가 적극적으로 사귀라고 권유를 하였다.

공장에 출근을 하여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난 그 아가씨와 아주 자연스럽게 잠자리를 하였고 그 아가씨의 한 많은 사연도 듣게 되었다.


그 아가씨의 엄마는 우리 엄마의 대학 후배였었고 유학까지 다녀와 대학에서 강으를 하는 교수로 임용이 될 정도의 실력파였고 그 아가씨의 아버지도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교수로 재임하던 중에 부부가 여행을 갔다가 오는 도중에 졸음운전을(추정)하는 바람에 낭떠러지에서 굴러 떨어져 즉사했고 12살 먹은 아이와 4살 먹을 동생만 남았는데 일가친척들이 유산을 가자고 흥청망청 마치 자기 돈 쓰듯이 써버리더니 돈이 떨어지자 그들 자매를 보육원에 보내버렸고 동생은 미국 입양수속까지 되었지만 언니가 때를 쓰며 보내지 말라고 하는 통에 어쩔 수 없이 같이 보육원에서 자라는데 뒤늦게 엄마가 자기 후배의 이야기를 듣고 찾은 것이 17살 때였고 엄마는 그 길로 그들 자매를 공장으로 데리고 와 학교를 보내면서 키웠고 그리고 장래 며느릿감으로 나도 모르게 낙점을 찍어 명절날 자매가 함께 오는 것은 보모님을 찾아뵈는 마음으로 왔고 다음 날 오는 것은 시가집에 들르는 마음으로 엄마아빠가 오라고 했다는 사실까지도 알았다.


잠자리를 하자 아가씨 아니 연수와 나의 결혼은 급물살을 타고 진행이 되었다.

혼수고 뭐고 준비를 할 것도 없었다.

우리 집 이층 일부를 기숙사로 사용하던 것을 내 마누라와 처제가 살던 지하를 정리하여 기숙사로 사용하게 하고 우리 집의 기숙사로 사용하던 곳을 구조 변경을 하여 신혼 방과 처제가 살 공간을 만들었다.

결혼식을 올렸다.


그런데 밑반찬도 인터넷을 이용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고 나의 생각을 정리하여 엄마아빠에게 보였다.

바로 실행을 하라고 하였다.

문제는 장소였다.

공장에 사무실이라고 해 봐야 사장인 아버지 책상 공장장인 엄마 책상이 마주보고 놓은 좁은 공간이 전부였다.

또 각 라인을 담당하는 관리자들의 책상도 장소가 협한 까닭에 라인 R트이 벽에 붙여둘 정도였다.

다만 연구개발실의 경우 넓었지만 아내 연수가 책임지고 있었고 거기에 컴퓨터나 잡다한 것을 들일 수 없다고 하여 거기도 내가 사용할 사무실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거기에서 도메인을 만들어 인터넷으로 주문을 받고 질문에 대답하고 주문 받은 주소로 배송 전표를 프린트하는 등의 인터넷을 실행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하였고 거기다가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공장에서 인터넷으로 영업을 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하였다.


대학에 다니면서 서재로 쓰던 방을 개조하여 재택근무를 하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그렇게 하라고 했지만 엄마는 반신반의 하였다.

일단 공장 소개와 제품을 찍은 사진 등이 올라간 도메인을 만들어 등록을 하였고 각 사이트마다 홈페이지를 만들어 도메인 수조를 홍보하였다.

생각보다 호응은 빨랐다.

주야 이 교대 체제로 돌입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한 달 후 작은 아버지가 전적으로 맡아 관리하던 2공장도 이 교대 체제로 돌입을 하였다.


“연아야 공장에 이것 좀 가져다주고 올래?”인터넷 판매가 초기 단계라 인적 투자를 하기에는 아직 무리수라 혼자 하였지만 간혹 처제 연아가 돕는 경우가 많았다.

아내 연수와 결혼을 하였을 때 처제 연아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고 대학도 이미 수시 입학에서 합격을 한 상태라 수능 성적만 어느 정도 나오면 그만이었다.

심부름이라고는 하지만 공짜는 아니었다.

아르바이트로 생각하라고 하고 급여를 주었다.

물론 용돈은 아내가 직접 주었고 나도 아내 모르게 얼마씩 주었다.

배송 전표 200장이면 보기보다 묵직하다.

하지만 연아는 그보다 많은 전표도 공장에 가져다주었다.


참 성격도 아내인 연수하고는 천양지차이가 났다.

아내의 경우 말이 거의 없는 편이고 조신하고 시부모님이나 나의 말이 사실과 다를 경우라도 무조건 예로 일관을 하는 성격이라면 처제 연아는 고집도 있었고 아닐 경우에는 그 어렵다는 언니의 시부모님인 사돈어르신들에게도 마구 대어들어 아내 연아와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이 괴고 나면 항상 우리 부모님이신 사돈어르신 앞에 공손히 무릎을 꿇고 자신이 한 행동 중에 잘 못 된 부분에 대하여서는 스스로 지적을 하며 사과를 하는 야무진 성격의 소유자였다.


“어머머 형부”그날은 전표가 너무 많아 내가 직접 차로 공장에 전표도 넘기고 신제품 사진과 재료와 맛 등을 메모를 하여 집으로 와 너무 더운 나머지 나도 모르게 욕실 문을 열고 말았는데 처제 연아가 알몸으로 목욕을 하고 있었다.

잊어버린 근친에 대한 향수가 살아나는 순간이었다.


“미.....미안 너무 더워서”하지만 황급히 문을 닫으며 얼버무렸고 그리고 소파에 앉아있었다.

“형부 변태”거실에 앉아있었더니 처제 연아가 수건으로 생머리의 물기를 닦으며 나오더니 내 맞은편 소파에 앉더니 다리를 꼬았다.

나이트가운의 갈라진 틈으로 팬티까지 보이며 말이다.

“아니야 몰랐어. 그리고 처제도 그래 안에서 걸지 왜 안 걸었어?”하고 말하면서도 공장에 다녀와 갈아입은 트레이닝바지 가장자리가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호호호 그렇게 치면 장군에 멍군이죠? 형부 언니 몸매가 좋아요 내 몸매가 좋아요?”처제가 물었다.

아니 그건 물음이 아니라 도발이라고 해야 맞은 것이다.

딴에는 살아나려는 잊어버린 근친을 잠재우려고 노력하던 나로서는 도발은 도발로 다스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후후 그렇게 옷을 입고 있어서야 언니하고 처제를 완전하게 비교를 할 수가 어디 있겠나?”하고 말하자

“그럼 이 정도면 비고가 되요?”처제가 벌떡 일어나더니 나이트가운의 앞단추를 모조리 풀어헤치더니 마치 패션모델이 하듯이 양 손을 허리에 대고 노 브래지어에 앙증맞은 팬티만 입은 앞면을 적나라하게 보이며 물었다.

“멋진데”하고 말하자

“남자가 멋지다고 말만하면 그만이에요?”처제가 내 옆으로 오며 말하였다.

“그럼 이렇게라도 하라는 말인가”나이트가운 안으로 손을 넣고 엉덩이를 어루만지며 묻자

“형부”처제가 쓰러지듯이 내 품에 안겨버렸다.

“처제 후회 안 할 자신 있어?”젖가슴과 엉덩이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전 언니처럼 형부가 정말로 언니의 남편이 되어줄 것이라는 사장님과 사모님 말만 믿고 마치 자신이 형부만 바라보는 해바라기처럼 살던 그런 삶이라면 살고 싶지 않아요, 마음 가면 마음 가는 가는 사람하고 연애도 하고 정 좋다면 결혼을 하지 못 하더라도 몸까지 아니 영혼까지라도 주며 살 거예요. 그 대상이 바로 형부였어요. 형부 제가 나쁜 년인가요?”처제는 말을 마치기 무섭게 내 입술에 입술을 포개었고 혀를 들이밀자 게걸스럽게 빨았고 팬티안으로 손을 넣어 엉덩이를 만지며 젖꼭지를 매만지자 콧소리 신음을 하며 어깨를 부르르 떨며 잡더니 목에 매달렸다.


“안방으로 갈까? 긴 키스 끝에 축축해진 팬티를 벗기며 말하자

“형부 저는 저고 언니는 언니예요. 시집가기 전에는 할 수 없이 언니 집에서 아니 언니 밑에서 살겠지만 형부하고 저만 있을 때는 제 공간에서 함께 있고 싶어요.”하고 말하며 나를 자기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처제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나이트가운을 벗어던져 완전한 알몸을 만드는가 싶더니 머릿결의 물기를 닦든 수건을 곱게 접고 친대 위에 펴더니 엉덩이를 그 위에 대고 눕더니 팔을 벌리며 눈을 감아버렸다.


사실 아내 연수와 결혼을 하고도 예전에 누나와 산촌여동생 그리고 엄마의 고종사농 여동생인 이모와 그리고 이모의 딸과 하였을 때처럼 그런 흥분이 되지를 아니하여 내 몸에 무엇인가 잘 못 된 부분이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술집여자들 그리고 우연히 나이트클럽에서 걸려든 여자들을 생대로 잠자리를 하여 보았으나 하나 같이 아내 연수하고 하는 빠구리처럼 뭔가 나도 모르게 화끈하게 달아오르는 것이 없는 그런 기분만 들었다.


그런데 역시 근친으로 성적 쾌감을 얻었던 나는 근친으로 얻어야 한다는 것을 난 처제 연아의 알몸으로 누운 모습에서부터 그 때의 그 쾌감과 흥분이 되살아남을 느꼈다.

초제 연아 몸 위에 몸을 포갰다.

연아가 목에 매달리며 입술로 입술을 더듬었다.

내 혀가 연아 입안으로 들어가자 다시 게걸스럽게 빨았다.

고삼 졸업반 여자아이답지 않게 능숙하게 빨았다.


“아~악! 형부 사랑해요, 나만 사랑해 줘요”손가락 끝을 등짝에 대고 찍어 누르며 눈물을 흘렸다.

“아파 처제 등에 상처라도 나면”미간을 찌푸리며 말하자

“아! 죄송해요”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말하기에

“아프지”물으며 젖가슴을 짚고 밑을 봤다.

아내 연수에 이어 처제 연아도 숫처녀였다.

“형부라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어요. 저에게 남자 친구가 생길 때까지 아니 생겨서 결혼을 하고서도 저를 버리지만 말아줘요”처제는 다시 목에 매달리거니 볼로 볼을 비비며 말하였다.

“그래 처제 나도 사랑해”펌프질을 시작하며 말하였다.


그랬다.

한 살 터울의 누나와 장난으로 시작한 근친상간은 사촌여동생과 이어졌고 그리고 엄마의 고종사촌 여동생 딸로 연결이 되더니 심지어 그 아이를 낳은 엄마의 고종사촌 여돈생인 이모와도 연결이 되었고 하나뿐인 처제와도 연결이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근친상간은 근친상간을 부르고 말았다.

난 처제는 나의 마지막 근친상간으로 끝을 낼 참이다.

그리고 부탁을 한다.

절대 근친상간은 하지 말라고 말이다.

근친상간의 늪에 빠지면 그 늪에서 쉽게 빠져나오기가 힘들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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