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만난 남자 - 7부

인도에서 만난 남자 - 7부

투딸 0 442

인도에서 만난 남자 7










"짜이 짜이 짜이 짜이 짜이........"








짜이 짜이 거리는 소리가 짜증스럽게 들려와 새벽 선잠을 깨운다.




도대체 짜이 가 뭔데? 어쩌라구?






아침이라고 일어나니 배가 아프다. 휴지를 찾다 짐을 쌀때 백 깊숙히 넣어둔게 기억이 나




다른 사람에게 빌리려니 다들 곤하게 자고 있어 깨우기가 미안하다.










"어기 휴지요."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케이가 휴지 두루마리를 들고 서있다.




여정히 싱글거리는 표정에 어이가 없어졌다. 난 어제밤 고민하느라 밤새 뒤척였는데.










"어떻게?"






"어떻게 알았냐구요? 간단하죠. 이른아침. 안절부절 못하는 태도. 불안한 표정. 뻔하죠"










케이의 말에 힘이 빠져 더욱 화장실이 다급해 졌다.




생리현상은 내 고민과 상관없이 정직하다. 뒷처리를 주의깊게 하고 있는데 기차가 멈춰선다.




벌써 바라나시에 도착한 것인가 싶어 재빨리 객칸으로 돌아가니 아직 다들 자고 있다.




케이를 찾으려 둘러보니 창문밖으로 은혜와 벤치에 앉아 있는 케이의 모습이 보인다.










" 짜이 드실래요?"






"?"








케이는 내 대답과 상관없이 짜이 장수를 불러 짜이를 주문한다.




엉겹결에 짜이 잔을 받아든 나는 의문스러운 얼굴로 케이를 바라보았다.








"뭐 2루피 밖에 안하는 데 부담 느끼시진 마세요"










옆에서 은혜가 말을 돕는다.




둘 사이는 어느새 더욱 가까워 보인다.










"새벽에 기차에서 내려 시골역에서 마시는 짜이와 담배가 나름대로 흥취있죠."








케이는 벤치에 않자 짜이를 한모금 마시더니 눈을 감고 담배를 태우기 시작한다.




순간 그런 케이가 굉장히 염세적으로 느껴지고 나에게도 전영이 되어오고 있는걸 느꼈다.




은혜마저 담배를 태우기 시작하자 나도 흡연욕이 갑자기 올라왔다.




주머니를 뒤지니 담배가 없었다. 기차칸에 두고 온것 같다.








"저기 담배 한대만."




"오루피요."








언젠가 들었음직한 가격이 그의 입에서 흘어나왔다.










"나중에."








케이에게 얻은 담배를 피워물고 짜이라는 차를 음미해본다.




부드럽고 달짝지근한게 새로운 맛이다.










"괜찮군."








눈을 감고 시골의 새벽공기와 부드러운 짜이의 감촉과 황홀한 니코틴을 느끼고 있는데




옆에서 일어서 걸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기차 출발해요"






".........."








케이의 여전히 쾌활한 목소리다. 새벽에 들으니 그 저음이 더욱 감미롭군.




담배 짜이 새벽공기와 더불어 케이의 목소리의 여운까지 즐기려는데 기차의 경적소리가 들린다.




엥?




눈을 뜨니 기차가 서서히 움직이고 있다.




다급히 서둘러 기차에 뛰어 올라가니 은혜가 픽하고 웃으며 핀잔을 준다.










"홀로 카타르시스에 빠져 계셨어요? 기차 줄발한다는데도 넋놓고."




"뭐 잠시 졸았나 보지."










내가 남자의 목소리를 감미롭게 즐기고 있었다는 것은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




분명 저음의 듣기 좋은 목소리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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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시가 다가오자 케이는 사람들을 깨워 정리를 시키고 짜이를 한잔씩 대접했다.




부산한 가운데서도 내눈은 은혜를 쫓고 있는걸 스스로 알고 있었다.








"뭐 읽냐?"










은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고서는








" 아 ! 아저씨. 이거는 류시화의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이요"










물론 들어본 이름에 들어본 책이름이다. 그러나 읽어본 적은 없다. 내가 알고 있는 이름이니




꽤 유명한 책인가 보다.






그러고 보니 독서를 해본지도 꽤나 오래 되었군, 요 몇년간은 서류나 뒤적거리고




문화 생활이라곤 인터넷으로 뉴스를 검색하고나 영화를 다운 받아보는 일이 고작이었던것 같다.




뭐 가끔 우리 이쁜이와 비디오도 빌려 보지만.










"이름은 들어 봤다."






"피~ 요즘 인도나 네팔 여행오는 사람들은 거의 이책 읽고 와요."






"그런가? 나는 그냥 우리 마누라가 가라고 해서 가방만 하나 들고 왔지."












어색하다. 어제 케이와의 대화 이후에 은혜를 마주 대하는게 아주 부자연스럽다.




그럼에도 내 눈은 계속 은혜를 쫓고 있다.












"일종의 암시죠."








"?"










케이가 불쑥 끼어들어 뜬금 없이 한마디를 던진다.




이 빌어먹을 녀석이 한마디를 던질때 마다 걱정이 앞선다. 이번엔 무엇으로 나를 흔들어 놓을까?










"내가 너의 이름을 불렀을 때 너는 내게로와 나의 꽃이 되었다."








" ? "








김춘수님의 "꽃"이 왜 갑자기?




도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건지..










"생뚱맞아요."








은혜가 불만에 찬 목소리로 설명을 요구한다.








"여행지에서 친절한 사람에게 의지 하고픈 마음이 생기죠. 그것이 호감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죠.




그런데 누가 묻습니다. 그를 좋아하느냐고. 그럴 경우 자신의 행동을 되짚어 보죠.




많은이 들이 이 경우 자신이 호감을 가지고 있는걸 숨기지 못하죠. 그리고 그 때 부터 그사람을 유심히




관찰하게 되죠. 무의식 적으로. 그리고 그사람의 행동 하나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생각하죠, 나는 저 사람을 좋아하는 구나.




일종의 자기 암시죠. 뭐 여행지에서 흔히 걸리는 마법이기도 하구요. 심심하면 실험해 봐요.




재미가 쏠쏠하죠."










그렇게 말하고는 또다시 사라지는 케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픽하고 웃고 만다




그렇군, 내가 은혜를 계속 지켜 봤던건 암시 때문이었군.






마음이 편하다. 줄곧 아내만을 보고 지내온 내가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빠져드는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안해 마누라.




그러고 보니 화가 나네. 저 빌어먹을 녀석이 나를 실험도구로 가지고 놀았다는 거 아냐?




그렇게 화나 날 찰나 은혜의 실망스러운 얼굴이 보였다.












"그런건가? 이건 좋아하는게 아닌건가?"










순간 은혜가 미치도록 처량해 보였다.




미안한 감정이 가슴속에서 퍼져 나갔다. 케이가 나를 가지고 장난을 쳤다면




나도 은혜를 가지고 장난친 셈이 되었다. 비록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은혜의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뭔가 사죄를 해야할 것만 같다.










"짜이 한잔 마실래?"








빌어먹을. 케이 개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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